“현우 씨, 오늘도 세림 간호사랑 점심이에요?”
간호조무사 선미의 농담 섞인 말에 현우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콩이도 보고, 밥도 먹고. 하루에 두 번 보는데 뭐.”
세림과의 연애는 조용히 진행 중이었다. 병원 사람들 중 몇몇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둘 다 워낙 바쁜 탓에 티가 크게 나진 않았다.
그렇게 평온한 날들이 계속될 줄 알았다.
그날, 세림이 근무하는 내과 병원에 새로운 의사가 들어왔다.
이도윤, 서울대 출신, 깔끔한 인상에 유머까지 갖춘 ‘잘난 남자’. 그리고 무엇보다, 세림의 대학 선배였다.
“세림아, 우리 오랜만이지? 요즘도 이탈리안 음식 좋아하냐?”
“선배, 아직도 그런 거 기억하세요?”
“그럼. 그때 너, 토마토 크림 먹고 기분 좋아졌잖아.”
현우는 멀찍이서 그 모습을 보았다. 웃는 세림, 자연스러운 도윤의 손짓, 오래된 사이의 익숙함.
처음으로 심장이 묘하게 식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하면서도 말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며칠 뒤, 세림과의 저녁 약속 자리.
“도윤 선배, 너 좋아했던 거 알아?”
현우의 말에 세림은 눈이 커졌다.
“언제 들었어?”
“오늘, 간호사 선미한테. 병원 사람들이 다 알더라.”
“…근데, 그게 왜?”
“나는 너랑 아무 추억도 없는데, 그 사람은 너랑 오래된 기억이 있잖아. 나보다 가까운 건 아닐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세림은 조용히 컵을 내려놓았다.
“현우야, 나도 그 사람이랑의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 너랑 있는 시간이 더 좋아.”
“그래도 나 질투 나.”
“그럼 해. 많이 해. 대신 나 놓지만 말아.”
현우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질투도 사랑의 일부라면, 그 감정마저 그녀는 다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손을 꼭 잡고 집까지 걸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그림자 두 개가 나란히 길게 늘어졌다.
그림자 속의 불안도, 의심도, 결국 사랑 안에서 조용히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