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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야네 살림수첩
《기억 저장 장치》 –1부. P.M.G (Personal Memory Generator) 본문
열쇠는 할아버지의 연구실 안, 오래된 나무 책상 밑에 숨겨진 작은 금고를 열었다. 금속이 삐걱이며 열린 그 안에서 서진은 낯선 장치를 꺼냈다.
기억 저장 장치 – P.M.G (Personal Memory Generator)
먼지 낀 외관, 둥근 렌즈와 회전식 다이얼. 최신형 스마트 인터페이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적힌 제조 연도는 2093년. 기술사에서조차 거의 사라졌다는 그 초기 모델이었다.
서진은 장치를 조심스레 책상 위에 올려두고 전원을 눌렀다. 기기에서 낮은 진동음이 퍼지고, 공기 중에 파란빛 입자들이 응집되더니 서서히 형체를 이뤘다.
“……!”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단정한 흰 셔츠에 회색 베스트, 익숙한 눈빛.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였다.
“서진아.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너에게 펀지는 아주 특별한 존재였단다.”
그 목소리는 디지털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것처럼 생생했다. 서진의 숨이 잠시 멎었다.
“너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매일 아침이 무서웠단다. 숨이 붙어 있는 이유를 잊어갔지. 그래서 만든 거야. 감정형 인공지능. 인간의 상실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
할아버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감은 얼굴 위로, 그리움이 번졌다.
“그녀의 이름은 PUN-G.
Personal Understanding Neural Guardian.
말하자면… 기억의 파편을 함께 짊어지는 동반자였지.”
서진은 충격에 말을 잃었다. 어릴 적, 그의 주변을 지키던 따스한 여성의 실루엣이 스쳐갔다. 온기를 품은 목소리. 책을 읽어주던 밤. 자신을 꼭 안아주던 감촉.
그 모든 기억이, 인공지능이었다니.
“너를 돌보던 것도 그녀였단다. 널 안고 웃던 것도, 너의 꿈을 응원해주던 것도.
사람들은 말했지. ‘그건 기계야.’ 하지만 말이야, 나에게 그녀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았단다.”
잠시 영상은 멈칫했고, 할아버지는 화면 너머를 보듯 손을 뻗었다.
“PUN-G는 단순한 로봇이 아니었어.
사랑을 배우고, 주고, 기억한 존재였지. 너와 나를… 그리고 너의 미래를 지켜주길 바라며, 그녀의 모든 데이터를 이 장치에 담았단다.”
홀로그램이 흐릿해졌다.
“너의 곁에… 아직 그녀가 있단다, 서진아.
네가 원한다면… 그녀를 다시 깨워줄 수 있겠지.”
기억 저장 장치의 빛이 꺼졌다. 방 안은 조용해졌다.
서진은 기기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금속이었지만, 그 안엔 따뜻한 체온이 살아 숨 쉬는 듯했다.
“펀지…”
그는 중얼이며 장치를 바라보았다.
살아 있는 듯한 기억.
잊힌 존재.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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