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 – 심판의 밤, 핏줄의 대가
밤.
폭우가 쏟아지고, 번개가 하늘을 찢는다.
정숙의 옛 별장에, 다시금 사람들이 모였다.
정현우가 돌아온다는 소식이 퍼졌다.
그는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
그리고 오늘, 모든 진실이 드러난다.
수아(진짜)는 벽난로 앞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어릴 적 불에 탄 사진 한 장이 들려 있다.
사진 속엔 정숙, 정현우, 미화, 그리고 자신—옅게 불에 그을린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 수아.
그때, 철컥.
문이 열린다.
검은 우비를 입은 정현우가 문 안으로 들어선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무거운 침묵이 공간을 내리누른다.
정현우:
“…그래, 왔어. 이제 다 말할 때가 된 거지.”
수아가 입을 연다.
“그날… 당신은 날 구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불길 속으로 날 밀어넣었죠.”
정현우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널 구하려고 했어. 하지만 이미 누군가, 너를 가둬버렸던 거야.”
미화의 눈이 커진다.
“무슨 말이야… 난 그냥 겁만 줬을 뿐이었어. 불을 크게 만들 생각은 없었어…”
정현우는 그녀를 노려본다.
“넌 몰랐겠지. 그 집에 이미… 가솔린이 뿌려져 있었단 걸.”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은서가 중얼거린다.
“…그럼 그날의 불은… 둘 이상의 사람이 연관된 거야.”
정현우는 낡은 가죽 서류가방을 열어 서류 하나를 꺼낸다.
"검은 금고에 숨겨진 마지막 진실"
그 안에는 진짜 유언장보다 오래된, 정숙의 자필 메모.
‘그날 불이 난 진짜 이유는... 미화가 아니라, 상진 때문이야. 그는 날 협박했고, 집에 몰래 들어와 불을 질렀다. 미화는 죄책감에 자백을 막았고, 은서를 살리기 위해 수아의 이름을 덮어씌웠다.’
모두가 상진을 바라본다.
상진은 무너진 얼굴로, 벽에 기대 서 있다.
“그래… 맞아.
정숙은 나와의 관계를 숨기려 했고, 난 그녀가 날 버릴까 두려웠지.
그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어…”
정현우는 눈을 감는다.
“그날 이후 나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어.
네 엄마는 끝내 날 용서하지 않았고, 내 아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 날 떠났지.”
수아:
“하지만 이제 알아요.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야. 난… 아버지 없이도 진실을 마주할 수 있어요.”
그러자 은서가 조용히 말한다.
“그리고 나도… 진짜 엄마가 아니더라도, 그 사랑을 기억해요.
정숙 엄마는 날 키우면서도, 단 한 번도 가짜처럼 대하지 않았어요.”
폭풍이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가운데—
갑자기 조명이 꺼진다.
그리고, 지하실에서 ‘삐삐’ 소리.
누군가 다시 금고를 열었다.
모두가 지하로 달려가고, 그곳엔 열려 있는 금고.
그리고 안엔 하나의 열쇠.
상진이 물끄러미 그것을 본다.
“저건… 정숙이 마지막까지 숨긴 금고의 열쇠야.
은행에 있는, 진짜 ‘핏줄 유산’의 열쇠.”
정현우가 조용히 말한다.
“그 유산은… 핏줄이 아니라, 죄를 인정한 자만 가질 수 있어.
그게 정숙의 마지막 판단이었어.”
그 순간—
총성이 울린다.
탕!
모두가 놀라 돌아보니, 미화가 쓰러져 있다.
그녀의 손엔 권총이 들려 있고, 입술에는 미소가 번져 있다.
“이제… 끝내야 할 시간이야.”
마지막 장면.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비는 점점 그친다.
수아는 고개를 들며 중얼거린다.
“심판은 끝났어.
이제 남은 건… 내가 누구였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누구로 살아갈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