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흩날리는 바람에 작은 꽃잎 하나가 실려왔다. 그 꽃잎은 내 손등 위에 내려앉았다가, 이내 다시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내 마음속에서 사라져간 한 사람을 떠올렸다.
사랑은 늘 그렇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다가도, 움켜쥐는 순간 스르르 흩어져 버린다. 가까이에 있는 듯 다가오다가도, 금세 멀리 달아나 버린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사랑아, 대체 왜 도망가니…”
1. 오래된 편지
서랍 속에 묻혀 있던 낡은 봉투 하나. 누렇게 바랜 종이에 적힌 글씨체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조심스레 봉투를 열자, 그 안에서 나온 건 오래전 그가 내게 남겨주었던 편지 한 장이었다.
“네가 웃을 때 세상이 다 밝아지는 것 같았어. 그런데 나는 왜 네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걸까.
혹시 내가 널 붙잡아도 되는 걸까.
아니면, 이 마음도 흩날리는 바람처럼 흘려보내야 하는 걸까.”
짧은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는 결국 내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떠나갔다. 남겨진 건 이 편지와,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뿐이었다.
2. 스쳐 간 계절들
그와 함께 걷던 골목길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여름이면 붉게 물드는 능소화가 피고, 겨울이면 가로등 불빛이 서늘한 눈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시간은 흘렀지만,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오직 우리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열정으로 가득했고, 사랑 앞에서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자꾸만 무력해졌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랑아, 왜 그렇게 도망갔니? 아니, 어쩌면 내가 너를 놓친 건 아닐까?”
3. 우연한 소식
며칠 전, 지인을 통해 그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먼 도시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음악을 좋아하던 그답게, 카페 한쪽에는 작은 무대가 마련되어 있고 가끔은 그가 직접 기타를 연주한다고 했다.
순간, 내 가슴은 크게 요동쳤다. 보고 싶다는 마음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스며들었다. 만약 다시 그를 마주한다면, 나는 어떤 얼굴을 해야 할까.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우리가, 다시 같은 길 위에 설 수 있을까.
4. 바람에게 묻는다
나는 다시 창문을 열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렸다.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물었다.
“사랑아, 넌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니? 아니면 정말로 떠나간 거니?”
바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스쳐 지나가며 귓가에 작은 속삭임을 남겼다.
“사랑은 도망가는 게 아니라, 그때의 너희가 붙잡지 못한 거야.”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웃어버렸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우리 곁을 스쳐간 게 아니라, 우리가 두 손으로 꼭 잡지 못했을 뿐이다.
5. 다시, 길 위에서
며칠을 망설이다, 결국 나는 마음을 정했다. 그가 있다는 도시로 향하는 기차표를 손에 쥐었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이 마치 지난 세월의 조각처럼 흘러갔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사랑아, 이번엔 도망가지 말아 줘. 아니, 내가 도망가지 않을게. 이제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 너를 그리워했고, 여전히 그리워한다는 걸.”
기차는 천천히 종착역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내 마음은 다시 시작되는 길 위에 놓여 있었다.
맺음말
사랑은 늘 우리를 시험한다. 붙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놓아버리면 다시 그리워진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사랑이 도망가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진심으로 붙잡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일지도 모른다.
나는 속으로 다시금 속삭였다.
“사랑아, 이제는 도망가지 마. 내가 끝까지 널 따라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