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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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사람들은 대개 ‘욕망’이라는 단어를 먼 이야기처럼 여긴다. 노년은 고요해야 하고, 욕구는 잠잠해져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그렇다. 그러나 강순애 할머니의 삶은 그 반대였다.

남편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오십 대 중반, 폐암으로 숨을 거둔 뒤로 순애는 십여 년 가까이 오직 자식과 손주만 바라보고 살았다. 서울로 떠난 자식들은 잘 찾아오지 않았다. 명절에도 통화 몇 번이면 그만이었고, 그 빈자리는 고요한 집 안 가득 쌓여만 갔다.

처음에는 무료함이 가장 큰 적이었다. 아침마다 일어나도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무료함을 넘어서는 묘한 결핍이 찾아왔다. 그것은 단순히 정서적 외로움이 아니라, 몸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갈망이었다.

순애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아직 여자로서 살아 있음을.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사랑과 스킨십을 원한다는 사실을.

 

마을회관의 만남

그날도 별일 없는 오후였다. 순애는 마을회관으로 바둑을 두러 갔다. 거기서 만난 이는 김노인, 여든을 바라보는 또래였다. 허리가 굽고 머리칼은 희끗희끗했으나, 그의 눈빛은 놀라울 정도로 반짝였다.

“순애 여사, 오늘따라 얼굴이 화사하시네.”
가볍게 던진 말 한마디에 순애의 가슴은 쿵 내려앉았다. 오랜만에 듣는 이성의 시선, 그 작은 칭찬 한 줄기가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바둑을 두고 난 뒤, 김노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내일 시장에 같이 가보시겠소? 혼자 가기엔 짐이 많아서 말이오.”

순애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밤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폭발하는 열정

다음 날 시장길에서 김노인은 그녀의 손에 장바구니를 쥐어주었다. 손끝이 스쳤을 뿐인데 전류가 흐르듯 떨림이 일었다. 젊을 적에는 흔한 스킨십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십 년을 홀로 지낸 순애에게는 그 작은 접촉이 폭발적이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자주 만났다. 도서관, 공원, 근처 절까지 함께 다니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어느 저녁, 김노인이 말했다.
“순애 여사, 우리 나이엔 이렇게 뜨겁게 설레는 게 기적 아닐까?”

순애는 대답 대신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주름투성이였지만, 그 속에 깃든 눈빛은 소녀처럼 투명했다.

그 순간, 순애의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욕망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단순히 손을 잡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살결을 원했고, 안김을 원했으며, 다시금 ‘여자’로 불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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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선

문제는 세상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두 노인의 만남을 곱게 보지 않았다.
“늙은이가 저 나이에 무슨 남녀가 만나고 설레고 난리야?”
“창피한 줄 알아야지.”

순애의 귀에도 그 말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개의치 않았다. 평생을 체면과 의무 속에 살았으니, 노년에 찾아온 마지막 불꽃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웃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늙었다고 욕망이 사라지는 게 아냐. 오히려 더 절실해지는 거지.’

 

다시 태어난 듯

둘은 자주 함께 지냈다. 밥을 해 먹고, 손을 잡고, 밤이면 긴 이야기를 나눴다. 때때로 서로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젊을 때보다 더 깊은 친밀감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충족이 아니었다.
서로의 외로움과 결핍을 메워주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였다.

순애는 거울을 보며 미소 지었다.
주름진 얼굴 속에서, 다시 태어난 듯 붉게 상기된 자신의 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는 봄

어느 봄날, 순애는 손주에게 전화가 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요즘 잘 지내?”
“그래, 할머니 요즘 아주 행복해. 다시 봄이 온 것 같아.”

손주는 그 말의 깊은 의미를 몰랐지만, 순애는 알았다. 인생의 봄은 나이에 상관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욕망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다짐했다.
앞으로 남은 날들을 더 이상 억누르지 않고, 폭발하는 열정을 마음껏 누리며 살겠노라고..

 

가족의 반대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순애는 큰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엄마, 요즘 동네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려. 엄마, 혹시 김노인이랑… 연애하신다는 게 사실이야?”

순애는 잠시 침묵하다가 차분히 대답했다.
“그래, 사실이다. 엄마도 이제는 혼자가 싫구나. 같이 웃고, 같이 밥 먹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자 큰딸의 목소리는 곧장 날카로워졌다.
“엄마! 지금 나이가 몇인데… 창피하지도 않아? 손주들도 있는데, 제발 정신 좀 차려!”

그 말에 순애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오래 누르고만 살았던 갈망을 이제 와서 부정할 수는 없었다.

 

마을의 눈총

그날 이후 마을회관에서도 수군거림이 더 심해졌다.
“저 늙은이들, 아주 기세등등하네.”
“욕정이 폭발했다지 뭐야. 참 꼴사납다.”

순애는 그 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곁에 선 김노인이 단단히 손을 잡아주었다.
“순애 여사, 그냥 우리만 믿읍시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오.”

그 말에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평생 남편에게조차 들어본 적 없는 위로였다.

 

불붙는 관계

두 사람은 점점 더 자주 함께 밤을 보냈다.
순애는 놀랄 정도로 몸이 다시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억눌러온 욕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듯, 심장이 뛰고 살결이 달아올랐다.
“내가 아직 이렇게 뜨거울 줄은 몰랐어…”
그녀는 숨을 고르며 속삭였다.

김노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욕망은 나이가 없소. 살아 있다는 증거일 뿐이지.”

순애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오랫동안 자신을 ‘늙고 쓸모없는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시금 하나의 인간, 하나의 여자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손주의 눈물

그러나 어느 날, 손주가 집에 찾아왔다.
“할머니, 제발 그만두면 안 돼? 친구들이 놀려… 할머니가 할아버지 말고 다른 남자랑… 그럴 수 있냐고…”

아이의 울먹임에 순애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손주를 안아주며 속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내 욕망이, 내 사랑이… 아이들에게는 짐이 되는 걸까?’

그날 밤, 김노인과 마주 앉은 그녀는 고백했다.
“우리 이렇게 계속 만나도 괜찮을까요? 자식들도, 손주들도 다 반대해요…”

김노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순애 여사, 사랑이 죄입니까? 우리가 서로 기대며 사는 게 누구에게 해가 됩니까? 이제라도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소?”

순애는 그 말에 다시금 심장이 요동쳤다.

 

마지막 결심

며칠 뒤, 순애는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너희는 창피하다고 하지만, 나는 부끄럽지 않다. 너희 아버지 돌아가시고 수십 년을 홀로 살았다. 이제라도 웃고 싶고, 설레고 싶다. 나는 더 이상 ‘엄마’로만 살지 않고, 한 사람의 여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겠다.”

자식들은 말문이 막혔다. 눈물을 훔치는 손주도 있었다.

순애는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뒷모습은 더 이상 주름진 노인이 아니라, 욕망과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인 한 인간의 강렬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에도 두 사람은 함께했다. 세상의 눈총은 여전했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순애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웃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랑한다.”

노년의 욕망은 폭발했지만, 그것은 추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의 마지막 불꽃처럼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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