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숨겨진 칸
영숙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금고를 열었다.
그동안 수십 번 본 금고였지만, 손전등을 비추자 바닥판 모서리에 작은 홈이 보였다.
그걸 눌러 올리니, 얇은 금속 판이 ‘찰칵’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 안에는 오래된 사진 몇 장, 그리고 도톰한 봉투 하나.
봉투 위에는 짧게 적혀 있었다.“이걸 보는 사람은 내 진짜 가족이다.”
2. 봉투 속 진실
봉투에는 친자확인서가 네 장 들어 있었다.
모든 결과는 충격이었다.
- 준호 → 친부: 미상 / 친모: 최영숙 (즉, 태석의 친아들이 아니었다)
- 지호 → 친부: 태석 / 친모: 윤미선 (비서)
- 하린 → 친부: 태석 / 친모: 이수진 (첫사랑)
영숙은 손이 덜덜 떨렸다.
“이 인간… 결국 나한테 진짜 아무것도 안 남겼구나.”
편지도 있었다.
“영숙아, 미안하다.
너와 결혼했을 때 이미 너는 준호를 임신한 상태였고, 나는 그걸 알고도 네 곁에 있었다.
대신 나도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었다. 지호와 하린… 그 둘은 내 피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다만 이용했을 뿐이다.
그래서, 마지막 재산은 너에게 모두 남긴다.
단, 조건이 있다. 이 진실을 아이들에게 절대 말하지 마라.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너도 파멸할 것이다.”
3. 유언을 깨뜨리는 사람
영숙은 한참을 앉아 편지를 바라보다가 결심했다.
“그래, 태석아. 너는 죽어서도 날 조종하려 하지만… 난 네 말 안 듣는다.”
다음 날, 영숙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모든 친자관계를 폭로했다.
준호가 자신의 전 남자친구 아들이라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순식간에 기자회견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지호와 하린은 서로를 바라보며 충격에 말을 잃었고, 준호는 얼굴이 굳은 채 자리를 떴다.
4. 폭풍 후의 고요
며칠 후, 세 명의 아이는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지호는 해외로 도망쳤고, 하린은 장학금을 받아 유학을 떠났다.
준호는 연락을 끊고 다른 도시로 이사했다.
영숙은 홀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재산은 여전히 그녀 손에 남아 있었지만, 집 안은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무명’.
상자를 열자, 안에는 작은 오르골과 쪽지가 있었다.
“영숙아, 드디어 내 계획이 완성됐네.
네 곁에서 모두 떠났지만, 넌 이제 완전히 자유야.
난 너한테 사랑받을 자격은 없었지만, 마지막까지 너를 웃게 하고 싶었어. – 태석”
오르골이 돌아가며 잔잔한 멜로디가 흘렀다.
영숙은 눈을 감았다.
“자유? 그래… 이제 정말 막은 내렸네.”
5. 에필로그
3년 후, 영숙은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손님들에게 과거 이야기를 절대 꺼내지 않았지만, 가끔 혼잣말을 했다.
“태석아… 네 막장 인생 덕에 난 이제 평온하다.
하지만… 또 누가 문을 두드리면, 난 아마 시즌5를 시작하겠지.”
그 순간, 카페 문이 열렸다.
낯선 젊은 남자가 들어와 말했다.
“혹시… 최영숙 씨 맞으세요? 저는… 당신 손자입니다.”
영숙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아… 이 막장은 끝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