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위의 그 남자 2. (주말의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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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은 아주 가까웠다.

우리 병원이 들어선 롯데마트 건물 뒤편, 오래된 3층짜리 주택. 외관은 낡았지만 마당에는 라벤더 화분이 늘어서 있었고, 창문은 깔끔한 커튼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누나, 여기예요. 바로 마트 뒤 골목.”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네?”

“응. 병원 짓기 전에 여기 먼저 구했거든요. 사실… 병원은 집 근처로 맞춘 거예요.”

“그럼 내가 더 가깝겠네?”

“그게 오늘의 포인트입니다.”

처음으로 그의 집에 들어선 날, 문을 여는 순간 풍기는 향신료 냄새에 깜짝 놀랐다.

“설마 요리한 거야?”

“응. 누나 좋아하는 거라 해서 미리 만들어뒀어요. 전복 미역국, 애호박볶음, 닭가슴살 장조림, 그리고…”

그는 냉장고에서 통을 꺼내며 말했다.

“마늘장아찌. 이건 우리 엄마표인데 누나 입맛 맞을 거야.”

정갈하게 차려진 상을 마주보고 앉으면서,

서희는 순간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평생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일이 이렇게 설렐 수 있나.

게다가 열한 살이나 어린 남자아이 같은 사람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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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잘했어?”

“대학 때 혼자 자취하면서… 연애는 못했는데 요리 실력은 늘었죠.”

“거짓말. 연애 안 했을 리가 없어.”

“진짜예요. 연상이 좋다니까 아무도 안 믿어주더라고요. 근데 누나는 믿잖아요.”

“내가 언제 믿는다고 했어?”

“지금요. 내 밥 다 먹고 있잖아요.”

서희는 웃으며 밥을 떠올렸다.

사랑이란 게, 꼭 극적인 장면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사람이 해준 따뜻한 밥 한 끼, 그게 사랑이었다.

 

🗝️주말의 작은 반복들

그 후로 서희는 주말마다 그의 집에 들렀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은밀한 일상이었지만, 그 공간에서 그녀는 ‘나이든 여자’도 ‘간호사 강서희’도 아니었다.

그저, 어떤 남자의 연인이자, 가끔은 귀찮게 굴고 싶은 ‘사랑받는 사람’일 뿐이었다.

“누나, 오늘은 어떤 테마 원해요?”

“테마?”

“이탈리안? 아시안 누들? 한식 위주 힐링 푸드?”

“나 배고프면 잔소리 많아.”

“그래서 미리미리 준비해놨어요. 오늘은 우엉조림이 포인트.”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프라이팬을 흔드는 모습은

강아지들과 장난칠 때의 유쾌한 얼굴과는 또 달랐다.

묵묵하게 재료를 다듬고, 간을 보고, 플레이팅까지 신경 쓰는 그의 뒷모습.

서희는 그런 모습을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나…’

 

늦은 오후, 커튼 너머의 고백

점심을 먹고, 라벤더 향 나는 베란다에 함께 앉아 있던 날이었다.

그의 집에는 큰 암막커튼이 설치돼 있었다. 낮인데도 방 안이 어두워졌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둘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누나.”

“응?”

“가끔 무서워요.”

“뭐가?”

“내가 이 사랑에 진심이라는 걸… 누나는 안 믿을까 봐.

그냥 어린애가 잠깐 반한 걸로 보일까 봐.”

서희는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나도 무서워. 내가 널 너무 좋아해서, 놓치고 싶지 않은데… 그게 이기적인 건 아닐까봐.”

그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꽉.

“그러니까… 무서운 건 같이 무서워요, 누나. 대신… 우리, 같이 겁먹고 같이 좋아해요. 한 번만요.”

그 순간, 서희는 모든 방어를 풀었다.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그에게 ‘나도 좋아해’라는 말을 건넸다.

그가 크림을 바를 때보다 더 조심스럽게,

간식을 건네줄 때보다 더 부드럽게.

 

😇마트 뒤, 우리만의 세상

마트 뒤에 위치한 그의 집.

창밖엔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 장을 다 보고 커피를 사러 가는 연인들.

그 평범한 골목길 안, 오래된 주택 2층 방 안에서

그들은 조용히 서로를 품었다.

“누나, 다음 주엔 삼겹살 할까요?”

“그럼 상추는 내가 준비할게.”

“아니, 마트 델리에서 좋은 거 골라놓을게요. 누나는 오기만 하면 돼요.”

“그렇게 다 해주면 내가 뭐가 돼.”

“내 사랑이 되면 돼요.”

어쩜 저렇게 오글거리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까.

서희는 웃으며 그를 밀쳤다.

“진짜… 넌 너무 드라마 같아.”

“누나 인생 드라마 만들어주는 중이에요. 주인공은 오직 한 명. 강서희.”

사람들 눈

물론,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병원에서도, 마트에서도… 서로를 모른 척해야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가끔은 참을 수 없었다.

마트에서 같은 시간에 장을 보다가, 마주친 눈빛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장바구니를 밀며 쪽지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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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오늘도 우리 집에서 접선. 치킨과 장아찌 준비 완료. 출입문 열려 있음.”

서희는 못 이기는 척 그 쪽지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오후 근무가 끝나자마자 달려갔다.

마트 뒤, 그 암막커튼 너머에 숨겨진 작은 세상으로.

조금은 불안한 현실

 

하지만 가끔, 불안이 찾아왔다.

그의 나이, 주변의 시선, 어쩌면 이 관계의 끝을 미리 걱정하게 만드는 현실들.

그리고 그보다 더 서글픈 감정.

‘내가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을 때 느껴지는 초조함.’

서희는 거울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아이가 10년 뒤, 나보다 더 어린 여자와 결혼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야. 사람들은 이해할 테고, 나는 뭐라고 말할 수도 없겠지.’

하지만 그런 걱정도, 그를 보면 사라졌다.

그는 오늘도,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시간 1분 전, 그녀의 손에 크림을 짜주며 말했다.

“누나, 이거 진짜 좋아요. 요즘 환절기니까 더 잘 발라야 해요.”

“나중에 크림 회사에서 스카우트 오는 거 아냐?”

“아니요. 저는 평생 누나 손만 발라주면 돼요.”

늦은 오후, 커튼 너머의 고백

 

점심을 먹고, 라벤더 향 나는 베란다에 함께 앉아 있던 날이었다.

그의 집에는 큰 암막커튼이 설치돼 있었다. 낮인데도 방 안이 어두워졌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둘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누나.”

“응?”

“가끔 무서워요.”

“뭐가?”

“내가 이 사랑에 진심이라는 걸… 누나는 안 믿을까 봐.

그냥 어린애가 잠깐 반한 걸로 보일까 봐.”

서희는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나도 무서워. 내가 널 너무 좋아해서, 놓치고 싶지 않은데… 그게 이기적인 건 아닐까봐.”

그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꽉.

 

“그러니까… 무서운 건 같이 무서워요, 누나. 대신… 우리, 같이 겁먹고 같이 좋아해요. 한 번만요.”

그 순간, 서희는 모든 방어를 풀었다.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그에게 ‘나도 좋아해’라는 말을 건넸다.

그가 크림을 바를 때보다 더 조심스럽게,

간식을 건네줄 때보다 더 부드럽게.

그의 나이, 주변의 시선, 어쩌면 이 관계의 끝을 미리 걱정하게 만드는 현실들.

그리고 그보다 더 서글픈 감정.

 

‘내가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을 때 느껴지는 초조함.’

서희는 거울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아이가 10년 뒤, 나보다 더 어린 여자와 결혼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야. 사람들은 이해할 테고, 나는 뭐라고 말할 수도 없겠지.’

 

하지만 그런 걱정도, 그를 보면 사라졌다.

그는 오늘도,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시간 1분 전, 그녀의 손에 크림을 짜주며 말했다.

“누나, 이거 진짜 좋아요. 요즘 환절기니까 더 잘 발라야 해요.”

“나중에 크림 회사에서 스카우트 오는 거 아냐?”

“아니요. 저는 평생 누나 손만 발라주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