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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사랑

notes2451 2025. 7. 2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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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서울로 상경했다. 예쁜 얼굴 하나 믿고 모델 학원을 다니다가, 어느 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광고 감독의 눈에 띄어 광고 촬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운명이 바뀌었다.

“다음 주부터 드라마 들어가요. 감독님이 너, 마음에 든대.”

소속사 실장의 말에 혜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바로, 강윤호였다.

국민 배우, 이십 대 여성들의 로망, 광고 10편 이상을 동시에 찍는 완벽한 남자. 혜진이 감히 좋아한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첫 리딩 날, 윤호는 혜진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신인이라고 들었어요. 떨릴 텐데, 제가 도와줄게요.”

그의 미소는 봄날 아지랑이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날부터 혜진은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물론, 감히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냥 현장에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뛰었고, 그가 대본을 넘기며 웃어줄 때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촬영이 끝난 뒤 윤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 연기 좋았어요. 밥, 먹었어요?”

“아… 아직이요.”

“그럼 나랑 같이 먹을래요?”

그날 이후, 그들은 종종 밥을 먹었다. 영화도 보고, 대본 연습도 함께 했다. 혜진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되어갔다.

주변에선 수군거렸다.

“강윤호가 저 신인한테 왜 저래?”

“혜진이도 제정신이 아니지. 감히 선 넘지 말지.”

혜진은 알고 있었다. 윤호에게는 몇 년간 사귄 연예인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것을. 언론에는 나지 않았지만, 업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혜진은 말하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당신 때문에 매일이 숨 막힌다고.

하지만 그날 밤, 윤호는 말했다.

“혜진 씨. 나, 요즘 이상해요. 당신 생각이 자꾸 나고, 같이 있는 시간이 제일 편하고, 웃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풀려요.”

혜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물이 흘렀다. 너무 행복해서, 너무 무서워서.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

사람들 몰래, 숨죽인 채.

데이트도 조심스럽게. 연락도 은밀하게.

어쩌면 그게 더 짜릿하고 달콤했다.

그러나 달콤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속사에서 알게 되었고, 혜진에게 압박이 들어왔다.

“이 관계 계속되면, 넌 끝이야.”

 

윤호는 흔들렸다.

혜진을 사랑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걸 가진 사람이었다.

이미 너무 많은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혜진아, 우린… 여기까지야.”

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눈물을 참았다.

잡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그를 천 번도 더 붙잡았다.

“나는 무모했어요. 알아요.

하지만 그때, 윤호 씨를 사랑한 건…

진심이었어요.”

시간이 흘러, 혜진은 이제 배우가 아닌 평범한 카페 사장이 되었다.

 

서울 성수동, 작은 골목 끝에 있는 조용한 카페.

하루는 어떤 남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글라스를 쓴 남자.

낯익은 미소.

강윤호였다.

“커피 한 잔, 마셔도 될까요?”

혜진은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윤호 씨.”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예쁜 눈.

그리고 그 눈 속의 여운.

“그때 내가 너무 약했어요. 지금도 가끔 생각해요.

그 무모했던 사랑을.

가장 진심이었던, 가장 순수했던 사랑을.”

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윽한 향 속에서, 조용히 대답했다.

“그 사랑,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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