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내 첫사랑과 내 옆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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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갈 무렵, 그녀가 돌아왔다.

정확히 17년 전, 아무 말 없이 사라졌던 내 첫사랑, 유진이.

“오랜만이야.”

그녀는 카페 유리창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눈빛은 여전히 깊고, 음성은 낯설 만큼 담담했다.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유진보다 차갑고, 강해 보였다.

그리고 이상할 만큼,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잘 지냈어? 결혼했다며.”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10년 됐어. 아들 하나 있고.”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 여자가 그렇게 좋았어? 나보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기에.

당시 유진은 이유 없이 떠났고, 나는 견디다 못해 지금의 아내, 수진을 만났다.

수진은 따뜻하고 착했지만… 유진만큼은 아니었다.

유진은 늘 나를 흔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랬다.

며칠 뒤, 내 휴대폰으로 익명의 메시지가 왔다.

[당신 아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어.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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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된 사진.

수진이 어두운 창고 같은 곳에서 어떤 남자와 통화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분명 “출근한다”고 말하고 나갔는데.

그날 밤, 수진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요즘 어디 다녀?”

“나? 그냥 친구 만나지. 왜?”

그녀는 태연하게 웃었다.

그 표정이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다음 날, 나는 유진을 다시 만났다.

“그 여자가 네 아내 맞아? 확실해?”

“무슨 말이야?”

유진은 노트북을 꺼내더니 영상을 보여줬다.

감시 카메라에 찍힌 수진.

수진은 그 영상에서, 병원에서 환자 정보를 훔치고 있었다.

그것도 몰래, 밤중에.

“수진이… 병원 사무직이야. 어떻게 이런—”

“그 여자, 널 감시하고 있었어. 네 회사 일, 네 계좌, 심지어… 너와 내 연락까지.”

머리가 멍해졌다.

수진은 내가 유진을 다시 만난 것도 알고 있었다는 건가?

“왜 나한테 이런 걸 보여주는 거야?”

유진은 내 눈을 똑바로 보았다.

“나도 감시당했으니까. 누군가 내 집에 침입했고, 그 흔적을 남겼어. 수진은, 단순한 아내가 아니야.”

그날 밤, 나는 일부러 늦게 집에 들어갔다.

집 안은 조용했고, 수진은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 옆에 앉았다.

“우리, 예전 얘기 좀 할까?”

“예전?”

“너… 나랑 처음 만났을 때, 왜 그렇게 갑자기 다가왔어?”

수진은 웃었다. “운명이었지. 넌 그때, 너무 외로워 보였어.”

“아니, 정확히는… 내가 유진을 잃고 방황할 때였지.”

그녀의 눈이 단단히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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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여자 얘기야?”

“그 여자가 말했어. 누가 우릴 감시하고 있다고. 네가… 날 지켜보고 있었다고.”

수진은 고개를 숙였다.

조용히 입술을 다물던 그녀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처음엔 의뢰였어.”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이야?”

“네가 유진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이 나한테 접근하라고 했지. 널 감시하라고.”

“누가…?”

“네 아버지야.”

충격.

아버지는 평생 내 앞에서 감정 표현 하나 없이 냉정했던 사람이다.

그가… 왜?

“유진이 너를 위험에 빠뜨린 적이 있었잖아. 그녀를 다시 만나면 안 된다고 판단했대. 그래서 나를 붙인 거야. 널 대신 지켜보라고.”

수진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진심이 됐어.”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유진과도, 수진과도 거리를 뒀다.

진실이 무엇이고, 거짓이 어디까지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수진이 사라졌다.

그녀의 병원에서는 이미 두 달 전 사직서를 냈다고 했다.

내게는 비밀로 한 채.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진이 사라졌어.”

“그럴 줄 알았어. 아마 마지막 수를 쓰려는 거야.”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어?”

유진은 조용히 주소 하나를 보냈다.

서울 외곽, 폐공장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향한 나는 폐공장 안에서 수진과 마주했다.

그녀는 어두운 조명 아래, 낡은 책상 위에 노트북을 두고 있었다.

“왜 여기 있는 거야?”

“모든 증거를 없애려고. 너도 알아버렸으니까.”

그녀는 마우스를 눌러, 스스로 저장했던 모든 감시 기록을 삭제했다.

“미안해. 너를 사랑했던 것도, 감시했던 것도, 모두… 진심이야. 하지만 이건 끝내야 해.”

나는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럼 함께 끝내자. 이제 그만 도망치자.”

수진은 자수를 선택했다.

모든 걸 인정했고, 내가 알던 수진과는 다른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얼굴은 홀가분해 보였다.

그 후, 유진은 다시 사라졌다.

남긴 메모 한 장.

“나는 너를 다시 흔들러 온 거였어. 하지만 이제, 끝내기로 했어. 너도 이제 네 인생을 살아.”

나는 여전히 수진과 함께 산다.

모든 과거를 잊진 못했지만, 모든 진실을 안 뒤에도 함께하기로 선택했다.

첫사랑은 파도 같았다.

마음을 휘젓고 지나가지만, 결국은 사라지는.

그리고 내 옆에 남은 사람은, 폭풍 후의 고요처럼 나를 지켜보는 수진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녀의 눈을 보면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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